영국 식민지 될뻔했던 거문도
하마터면 영국 땅이 될 뻔했던 거문도 점령 사건과 비화
전라남도 여수와 제주도 사이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섬 거문도는 19세기말 세계적인 강대국들의 대결의 무대였습니다.
1885년 4월 영국 해군이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거문도를 무력 점령하여 마음대로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 부르며 2년 동안 섬을 요새화했습니다.
조선 조정의 허가도 없이 벌어진 이 초유의 점령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으며 당시 거문도 섬 주민들과 영국군 사이에는 어떤 기이하고 흥미로운 얘기들이 존재했는지 한번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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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도 |
1.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 과정과 배경
영국이 멀고 먼 동아시아의 작은 섬 거문도를 점령한 이유는 중앙아시아에서 펼쳐지던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다툼인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때문이었습니다.
1885년초 아프기니스탄 접경 지대에서 영국군과 러시아군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양국 사이에는 당장이라도 전면전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러시아의 부동항 확보 견제: 부동항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려던 러시아 동양함대의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영국은 동아시아 최고의 군사적 요충지인 거문도를 주목했습니다.
압도적인 정박 여건: 거문도는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외해의 파도를 막아주고 수심이 깊어 대형 군함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였습니다.
기습 점령: 1885년 4월 15일 영국 해군 함대 6척과 상선 2척이 거문도에 기습 입항하여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포대와 병영을 설치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정작 사건이 터지고 한 달이나 지나서야 점령 사실을 알게 되었을 만큼 무기력한 상황이었습니다.
2. 거문도에 도입된 최첨단 문물과 요새화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은 이곳을 단순한 임시 거점이 아니라 영구적인 군사기지로 만들기 위해 섬 전체를 신속하게 요새화했습니다. 당시 영국군 주둔 인원은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800명에 달했고 군함도 10여척이 항시 정박해 있었습니다.
해저케이블과 전기의 등장
영국군은 거문도와 청나라 상하이를 잇는 해저통신 케이블을 전격 부설했습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부설된 해저케이블이었습니다.
또한 군함의 발전기를 가동하여 밤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는 전등을 켰는데 전기를 처음 본 거문도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최초의 테니스장과 신문물 유입
영국군들은 병영막사를 세우면서 여가 생활을 위해 거문도에 한국 최초의 테니스장을 만들었습니다. 섬에는 영국산 캔물품과 담배가 흔하게 굴러다녔고 외국산 소와 양 및 오리 등을 들여와 섬 안에서 직접 목장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3. 영국군과 거문도 주민들의 기이한 우호 관계
외세의 무단 점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 거문도 주민들과 영국 수병들의 관계는 의외로 매우 호의적이고 우호적이었습니다. 영국 해군 지휘부는 엄격한 군기를 적용하여 섬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약탈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임금 지급과 경제적 활력
영국군은 병영 막사 건설이나 항만 토목 공사에 거문도 주민들을 동원하면서 정당한 노동 임금을 현금(조선 동전 및 영국 화폐)이나 쌀로 지급했습니다. 땅을 빌릴 때도 정당한 임대료를 지불했습니다.
부패한 조선 관리들의 수탈에 시달리던 섬 주민들 입장에서는 일한 만큼 꼬박꼬박 돈을 주는 영국군에게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영어 습득과 괴담
영국군과 자주 접촉하던 거문도 어린이들과 주민들은 금세 간단한 영어를 익혀 소통했습니다. 담배를 달라고 영어로 떼를 쓰기도 하고 주지 않으면 영어로 욕(Fuxx you)을 할 정도로 친근해졌습니다.
아마도 당시 거문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또 현지 여자 무당과 영국 수병간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4. 자진철수와 오늘날 거문도에 남아있는 흔적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2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나 청나라의 중재와 러시아가 조선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영국에 전달하면서 1887년 2월 27일 최종 철수로 마무리되었습니다.(약 22개월간 점령)
자진철수해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식민지가 되어 최근까지 영국령으로 남아 있을 뻔했던 것입니다. 영국군이 철수할 때 일부 주민들은 그동안 정들었던 영국군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거문도 영국군 묘지
현재 거문도에는 점령기간 폭발사고나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영국 수병들의 묘지 3기가 거문도 역사공원 내에 남아있습니다. 젊은 나이의 그들은 부모형제를 멀리두고 이역만리 타향 땅에 잠들어 있습니다.
영국 대사관 관계자들은 지금도 매년 이곳을 찾아 참배를 올리고 있으며 머나먼 타국 땅에서 숨진 자국 군인들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거문도 점령 사건은 열강들의 그레이트 게임에 휘둘린 조선의 서글픈 역사인 동시에 이국적인 문물과 사람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기묘한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거문도에 여전히 남아있는 영국군 묘지와 최초의 테니스장 터는 140여년 전 이 작은 섬에서 벌어졌던 격동의 세계사를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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