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코앞의 두 섬은 어떻게 영국 땅이 되었을까
[세계의 영토 변천사]
영국해협 서쪽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선에서 불과 30km 떨어진 곳에 건지(Guernsey)와 저지(Jersey)라는 섬들이 존재합니다. 이곳은 영국에서는 120km 멀리 떨어져 있고 두 섬 합해서 인구 17만명, 면적 180km²로 서울시 면적의 30%에 조금 못미치는 꽤 넓은 섬입니다.지도를 보면 알수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프랑스 땅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지척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영국 국왕을 자신들의 군주로 모시며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턱 밑에 위치한 이 섬들이 어떻게 영국의 영토가 되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역사와 현재 이 섬들이 가진 독특한 정치 및 법적 지위를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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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ght house, Jersey island |
1. 노르망디 공국과 정복왕 윌리엄의 등장
건지와 저지 섬이 영국 왕실과 인연을 맺게 된 역사는 10세기 바이킹의 후예들이 프랑스 북부에 세운 노르망디 공국(Duchy of Normandy)시대로 올라갑니다.
서기 911년 서프랑크 왕국(Kingdom of West Francia)은 바이킹 침략에 시달리다가 협상을 하여 바이킹 수장 롤로(Rollo)가 서프랑크 왕국에 충성맹세하는 조건으로 Rollo에게 노르망디 지역의 통치권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수장에게 공작(Duke)의 직위를 수여하여 노르망디 공국이 탄생하였으며 이때 채널 제도의 섬들도 자연스럽게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1066년 노르만의 영국 정복
서기 1066년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윌리암 1세(정복왕 윌리암, William the Conqueror)가 7,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영국을 침공하여 영국의 Harold왕을 전투에서 죽이고 영국 왕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노르망디 공작이 곧 영국의 국왕이 되는 독특한 통치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때 건지와 저지섬 역시 노르망디 공국의 일부로서 영국 왕실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때 점령자인 노르망디 공국의 언어가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오늘날 영어단어의 30% 정도가 프랑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work은 영어 고유의 단어, labor는 프랑스에서 온 단어이고 ask - question, help - assist, begin - commence, end - finish (앞은 영어 고유의 단어 - 뒤는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등등 무수히 많습니다. 영어 고유의 단어는 평범한 일상에서 쓰이고 프랑스어에서 온 단어들은 공문서 같은 좀 고급스런 느낌으로 사용됩니다.
마치 우리가 우리 고유의 말과 한자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2. 프랑스와의 전쟁과 섬 주민들의 선택
시간이 흘러 1204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Philip II)가 영국 왕실(노르망디 공국의 계승자)이 소유하고 있던 프랑스 본토의 노르망디 땅을 침공하여 도로 빼앗았습니다.
이때 프랑스 본토의 노르망디 영토는 모두 프랑스 왕국으로 넘어갔지만 30km 떨어져 있던 건지와 저지 섬 주민들은 프랑스가 아닌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을 선택했습니다.
영국 왕실의 파격적인 특혜 지원
프랑스 코앞에 위치한 이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기 위해 영국 국왕은 섬 주민들에게 엄청난 자치권과 혜택을 약속했습니다.세금 면제와 자치권 보장: 영국의 세금을 면제해 주고 섬 자체적인 법률과 사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노르망디 영토: 결과적으로 이 섬들은 과거 정복왕 윌리엄이 다스리던 옛 노르망디 공국의 영토 중 영국 왕실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영토가 되었습니다.
3. 영국 직할지인가 자치령인가 - 법적 지위
많은 이들이 건지와 저지 섬을 영국의 행정 구역이나 해외 영토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섬들의 법적 지위는 매우 독특합니다. 이 섬들은 영국(United Kingdom)이라는 국가의 지방행정 단위가 아니며 영국의 일반적인 해외영토(British Overseas Territory)도 아닙니다.영국 국왕과의 직접적인 관계
건지와 저지 섬은 영국 정부나 영국 의회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섬 주민들은 영국 국왕을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작의 후계자로서 모십니다.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 섬마다 자체의회와 사법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자체적으로 법률을 제정합니다.
독자적인 화폐와 세제: 영국 파운드와 1대1로 교환되는 독자적인 건지 파운드(Guernsey Pound)와 저지 파운드(Jersey Pound)를 발행하며 영국의 세법이 적용되지 않아 유럽의 대표적인 조세 회피처 중 하나로 발전했습니다.
영국의 역할: 영국 정부는 오직 이 섬들의 외교와 국방만을 대신 담당해 줄 뿐 내부 행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4. 제2차 세계대전때의 수난과 현재의 모습
프랑스와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은 2차대전 당시 비극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자 영국 정부는 이 섬들을 방어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그 결과 건지와 저지 섬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유일한 영국 영토라는 아픈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건지와 저지 섬은 고유한 노르망디 유산과 영국 문화가 오묘하게 섞인 독특한 매력을 자랑합니다. 프랑스어에 뿌리를 둔 고유 언어인 저지어와 건지어가 일부 남아있으며 금융업과 관광업 및 농업을 바탕으로 매우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건지와 저지 섬이 프랑스 턱 밑에서 영국의 영토로 남게 된 것은 1,000여년 전 노르만 정복의 역사와 중세 영국 왕실이 부여한 파격적인 자치 특권이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경계선과 지리적 위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이고 흥미로운 역사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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