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토 변천사] 흔히 우리는 영국이라는 한 단어로 부르지만 공식 국호는 "대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입니다. 보통 줄여서 UK라고 칭합니다. 영국이라는 나라 안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북아일랜드라는 서로 다른 민족과 역사를 지닌 자치행정 지역들이 모여 있습니다. 전 세계 축구대회나 올림픽 등에서 보면 영국은 왜 4개의 팀이 참여하나라는 의문이 들것입니다.(England, Scotland, Northern Ireland, Wales) 이들이 왜 따로 팀을 꾸려 나오기도 하고 서로를 강하게 견제하는지 그 깊은 갈등의 원인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Edinburgh castle, Scotland 1. 인종과 언어의 뿌리부터 다른 역사 이들 지역은 민족적 뿌리부터 완전히 다릅니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 원래 영국 섬 전체의 주인은 켈트족이었습니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는 이 켈트족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독자적인 켈트계 언어를 사용해 왔으며 지금도 웨일스어와 게일어라는 독자적인 언어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5세기 무렵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유럽 대륙에서 건너와 기존의 켈트족을 북쪽과 서쪽 외곽으로 쫓아내고 잉글랜드를 차지했습니다. 잉글랜드인이 사용하는 영어 역시 게르만계 언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는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영국인 위주의 개신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북부 6개주를 영국에 남겨둔채 나머지 지역만 독립을 인정하였습니다. 이후 아일랜드로의 통합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의 폭력투쟁을 거쳐 현재는 표면적으로는 평화공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잉글랜드는 침략자의 후손이고 웨일스와 스코틀랜드는 정복당하고 밀려난 원주민의 후손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이 밑바탕에...
[세계의 분쟁 지역] 지도를 펼쳐놓고 유럽을 보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작은 지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명백히 동유럽 국가들과 접해 있지만 이것은 놀랍게도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러시아 영토에 속하는 곳입니다. 바로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입니다. 러시아 본토와 육지로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 땅의 역사와 고립의 원인을 들여다보겠습니다. 1. 원래는 옛독일 프러시아 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 칼리닌그라드가 처음부터 러시아 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 수백년 동안 이곳은 독일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였던 프러시아(Prussia)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였습니다. 프러시아 왕국의 수도이자 유명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평생을 살며 학문을 연구했던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이 지역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2. 2차 세계대전 승전의 대가로 소련 땅이 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승전국인 미국, 영국, 소련은 포츠담 회담을 열고 2차대전 당시 소련이 점령한 이 지역의 통치권을 소련에 넘기기로 합의 하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스탈린은 부동항 즉, 일년 내내 얼지 않는 따뜻한 항구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이 지역 합병에 결사적 이었습니다. 결국 스탈린은 쾨니히스베르크를 소련 영토로 합병했습니다. 소련은 기존에 살던 수십만 명의 독일 주민들을 전부 추방하고 그 자리에 소련인들을 대거 이주시켰으며 도시 이름도 소련의 정치인이었던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따서 칼리닌그라드로 전격 변경했습니다. 3. 멀쩡했던 땅이 외딴섬으로 고립된 결정적 계기 러시아가 아닌 소련 시절에는 칼리닌그라드가 아무런 불편 없이 본토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에 있는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모두가 소련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국가 체...
[세계의 관심사] 2025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과의 회담중 남아공에서 백인 농장주들이 대규모로 살해당하고 땅을 빼앗기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악명 높은 인종격리 정책이었던 아파르트하이트(Apartheid)가 철폐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남아공에서는 흑인 정권에 의한 백인 역차별과 살상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거대한 비극과 현재의 실태를 알아봅니다. Cape Town, South Africa 1. 소수 백인의 폭거 아파르트하이트(Apartheid)의 잔혹한 역사 남아공의 현대사는 수백 년에 걸친 백인 이주민들의 지배와 흑인에 대한 가혹한 수탈로 얼룩져 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계 이주민인 보어인들(Boers)과 이후 들어온 영국인들은 남아공의 풍부한 다이아몬드와 금광을 독점했습니다. Boer란 말은 네데란드어로 농부를 뜻한다고 합니다. 1948년 정권을 잡은 백인중심의 국민당(National Party)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아파르트하이트(Apartheid)라 불리는 극단적인 인종격리 제도를 법제화여 1994년 폐지될때까지 무려 46년 동안 가혹하게 시행하였습니다. 거주지와 이동의 제한: 흑인들을 전국에 산재한 10개지역을 지정하여 강제로 살게 하였는데 이는 전체영토의 13%에 불과한, 주거지로서는 부적절한 거의 황무지와 다를바 없는 지역이었으며 신분증 없이 백인구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들 흑인들이 사는 지역을 반투스탄(Bantustan)으로 불렀으며 고향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기본권의 박탈: 투표권은 물론 백인과의 결혼이나 교제가 전면 금지되었으며 교육과 직업의 기회도 철저히 차단 당했습니다. 이 잔혹한 체제는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중심으로 한 흑인 민중들의 유혈투쟁과 국제사회의 거센 압박과 경제적 제재에 힘입어 1994년 최초의 자유 총선거를 통해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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