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또 히틀러같은 극우정권이 들어설수 있을까

들어가며

요즘 유럽에서는 불법적으로 넘어오는 아프리카, 중동 이민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시민들의 반이민 정서에 힘입어 극우 정권들이 출범할 가능성이 있거나 이미 집권중입니다.  만약 독일에서 또 극우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는 유럽의 위기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것입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시나리오 일까요?

오늘은 어떻게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고 전세계적 재앙을 초래했는지와 그 교훈은 무엇이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자로 꼽히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흔히 쿠데타나 무력폭동으로 정권을 잡았을 것이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히틀러와 나치당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라고 평가받던 바이마르(Weimar) 공화국의 헌법체계와 합법적인 선거절차를 통하여 권력을 잡았습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이용해 합법적 독재국가를 완성한 히틀러의 정권수립 과정을 통하여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할수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Berl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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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의 허점을 노린 전략

히틀러가 처음부터 합법적인 노선을 택했던 것은 아닙니다.
1923년 히틀러는 뮌헨의 한 맥주집에서 무력으로 정부를 뒤엎으려한 이른바 맥주홀 폭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옥중에서 자신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Mein Kampf)을 집필한 히틀러는 무력에 의한 쿠데타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쨌든 온정적인 판사들에 의해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그것도 중간에 감형되어 조기 석방된 사실을 되돌아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약 판사들이 Hitler의 내란죄에 대하여 법률에 정해진대로 종신형을 선고하고 사회로부터 히틀러를 영원히 격리시켰다면 2차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것 입니다.

이후 그는 선거에 출마하여 의회내에서부터 집권하는 합법적 투쟁 노선으로 전략을 완전히 수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919년 나치당의 전신인 독일 노동자당을 창당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나치(Nazi)라고 부르는것은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 Partei)의 이름에서 na와 zi를 따서 nazi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2. 대공황의 혼란을 틈타 합법적으로 총리에 취임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은 바이마르 공화국 경제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엄청난 실업자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히틀러는 이 혼란을 극단적인 선동의 장으로 이용했습니다.

제1당 등극: 1932년 총선에서 나치당은 독일사회의 경제위기를 강조하는 대중선동을 통해 37%의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의회내 제1당으로 올라섰습니다.

합법적인 총리 지명: 보수파 정치인들과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대통령은 나치당을 이용해 정국을 안정시키려 했습니다. 그런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1933년 1월 30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히틀러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합법적인 총리로 공식 임명했습니다.


3. 의사당 방화 사건과 비상사태 선포

총리에 오른 히틀러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바이마르 헌법에 명시된 비상조치권을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총리취임 직후인 1933년 2월 독일 의회의사당에 원인 불명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는데 히틀러는 이를 공산주의자들의 폭거로 몰아세웠습니다.

히틀러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설득하여 ''국민과 국가 보호를 위한 대통령령''을 발포하도록 했습니다. 이 비상명령을 통해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및 언론의 자유등 국민의 기본권이 합법적으로 정지되었고 경쟁관계에 있는 정당 인사들을 합법적으로 체포하기 시작했습니다.

4. 민주주의의 사망 선고 전권위임법 통과

기본권을 정지시킨 히틀러는 마침내 1933년 3월 23일 독일 민주주의를 완전히 끝장내는 결정적인 법안을, 독일 정국이 비상상황임을 이유로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권위임법(Enabling act)입니다.

이 법안은 의회의 동의 없이도 총리와 내각이 임의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즉 의회의 입법권을 총리 한 사람에게 완전히 넘겨주는 법이었습니다.

압박과 협박: 나치 친위대와 돌격대가 의회를 둘러싸고 의원들을 위협했습니다.

압도적 통과: 의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치당과 연정한 정당들은 찬성표를 던졌고 전권위임법은 합법적으로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이 순간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는 공식적으로 종말을 고했고 히틀러는 입법권과 행정권을 모두 가진 합법적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5. 총통 탄생과 제3제국의 완성

1934년 8월 히틀러의 전권 행사에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했습니다.
히틀러는 대통령직을 없애고 대신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하나로 합치는 법안을 의회를 거쳐 의결하고 총통(Führer)이라는 자리를 신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동적으로 총통이 되었습니다. Führer의 사전적 의미는 리더(leader)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 조치를 국민투표에 붙여 90%를 넘는 찬성표를 얻어내며 통치의 합법적 정당성까지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나치 독일 제3제국(Third Reich)의 독재체제가 완벽하게 구축되었습니다.

히틀러는 그들의 정권을 제3제국이라 불렀는데 이는 제1제국(신성로마 제국), 제2제국(프로이센 제국)의 뒤를 이어 독일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자신들을 미화하여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후의 과정은 우리가 아는바 대로 2차대전을 일으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불행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일으킨 2차대전으로 인해 군인 2,000만명, 유대인 학살 600만명을 포함한 민간인 5,000만명 모두 합하여 7,000만명이 목숨을 잃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재앙을 겪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7,000만명은 남북한 인구를 합한 숫자와 같습니다)


6. 히틀러가 인류에게 남긴 교훈

결론적으로 히틀러의 나치정권 수립은 무력으로 헌법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헌법내에 존재하는 비상사태 조항과 법률제정 절차를 악용하여 민주주의를 교묘히 파괴한 비극적인 역사였습니다.

가장 민주적인 제도조차 비판적인 의식과 견제가 없다면 어떻게 독재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독일은 나치의 집권과정과 죄상을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여 철저히 교육하며 나치가 저지른 인류에 대한 죄악을 분명히 반성하고 사과하고 있습니다.

반면 어느나라는 제국주의 시대에 저지른 만행을 숨기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또 그들 전범들을 안치한 신사를 정부차원에서 방문하는 등의 행위는 독일의 전쟁범죄를 대하는 태도와 명확하게 대비되고 있는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독일의 건전한 교육시스템이 살아있고 독일시민들의 건강한 집단지성이 작동하는한 Hitler같은 극우정권이 들어설 자리는 없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민문제에 초강경한 정권이 들어설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로 편하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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