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한국인 최초로 필리핀을 여행했던 홍어장수 이야기
조선 후기 신안 앞바다에서 홍어를 사서 팔던 평범한 상인 문순득은 예기치 않은 풍랑을 만나 아시아 3개국을 떠도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문순득의 표류 여정은 조선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광범위한 해양이동 기록입니다. 그는 순조 1년에 표류를 시작했으며 일본 오키나와(류큐)와 필리핀(여송국) 그리고 포르투갈의 관할이던 중국 마카오를 거쳐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1801년 연말에 시작되어 장장 3년이상 이어진 그의 놀라운 아시아 일주와 이를 기록한 책 표해시말(漂海始末)의 기록을 따라가 봅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문순득을 포함한 6명의 표류기입니다)
1. 흑산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다
1801년 12월 전라도 우이도(현재의 신안군 우이도) 출신의 24살 상인 문순득은 일행 5명과 함께 흑산도 인근에서 태사도를 거쳐 홍어를 사서 돌아오던 중 거대한 풍랑을 만났습니다.
돛대가 부러지고 방향을 잃은 배는 장장 14일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았습니다.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1802년 1월 그들이 기적적으로 표착한 곳은 다름 아닌 류큐왕국 즉 오늘날의 일본 오키나와였습니다.
류큐 사람들은 표류민을 구휼하는 전통에 따라 문순득 일행에게 쌀과 옷을 주며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문순득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류큐어 주요 단어를 금세 익혔고 약 8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며 류큐의 풍속과 문화를 깊이 관찰했습니다. 이후 류큐왕국의 도움을 받아 중국 청나라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가는 조공선에 오르며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2. 두번째 풍랑을 만나 필리핀으로 가다
그러나 불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802년 10월 문순득 일행 6명은 류큐를 떠나 중국 복건성으로 향하던 선단에 몸을 실었지만 또다시 거대한 태풍을 만나 2척의 배는 침몰하고 문순득 일행이 탔던 1척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남쪽으로 걷잡을 수 없이 떠밀려 간 것입니다.
수십 일을 표류한 끝에 1802년 11월 문순득 일행이 목숨을 건진 곳은 필리핀의 루손섬 즉 당시 조선에서 여송국이라 부르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이 상륙한 곳은 루손섬 북단에 위치한 지금의 Vigan City 였습니다. (여송국은 필리핀의 Luzon을 지칭하는 음차표기입니다)
이 두번째 표류로 인해 문순득은 필리핀 땅을 밟은 역사상 최초의 조선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문순득은 그곳에서 서양식 2층 석조건물과 웅장한 천주교성당 그리고 화려한 서양인들의 복식과 마차를 난생처음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는 낯선 필리핀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밧줄을 꼬아 파는 노동을 하며 스스로 생계를 유지했고 필리핀 현지어까지 빠르게 습득하며 9개월 동안 현지인들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3. 마카오와 북경을 거친 귀향길
루손에 머물든 문순득 일행중 4명은 먼저 중국으로 가는 무역선을 탈수 있었으나 문순득과 또 한명은 함께 가지 못하다가(아마도 돈 문제인듯 합니다) 1803년 9월에야 필리핀에 들어온 중국상선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중국땅을 밟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일반적인 중국영토가 아니라 포르투갈 상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마카오였습니다.
마카오에서 그는 또 다른 서양문물과 전세계에서 몰려든 상인들의 활발한 무역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이후 광저우와 난징을 거쳐 육로로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이동하는 험난한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1804년 11월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에 도착한 문순득은 조선의 동지사 사신 일행과 극적으로 합류하였고 1805년 1월 마침내 3년 2개월이라는 긴시간을 넘어 꿈에 그리던 고향 우이도로 살아 돌아왔습니다.
4. 실학자 정약전과의 운명적 만남 표해시말의 탄생
문순득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우이도에는 훗날 자산어보를 집필하게 되는 당대 최고의 실학자 정약전이 신유박해로 인해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약전은 평범한 상인이었던 문순득이 아시아 바다를 누비며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약전은 문순득의 구술을 바탕으로 표류경로와 각국의 풍속, 가옥형태, 의복, 선박의 구조등을 치밀하게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이 위대한 기록이 바로 표해시말(漂海始末)입니다.
일반적인 양반 사대부들의 중화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열린 관점으로 외국의 문물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해양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5. 아시아 문화교류 사료로서의 가치
표해시말이 지니는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책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외국어 어휘집입니다.
정약전은 문순득이 기억하고 있던 류큐어 81개와 필리핀 루손어 54개를 우리말 발음으로 정확하게 채록하여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는 19세기초 동아시아 비교 언어학 연구에 있어 아주 귀중한 1차 사료가 되었습니다.
또한 훗날 유배에서 풀려난 정약용은 형 정약전이 보낸 문순득의 기록을 읽고 조선의 화폐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때 문순득이 전해준 필리핀의 은화 사용 사례를 핵심근거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기는 닫힌 사회였던 조선에 류큐와 필리핀 그리고 마카오의 서양 문물을 생생하게 전달한 아시아 교류사의 희귀한 발자취이며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평범한 조선 민초의 위대한 인간승리 기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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