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주장대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정말 같은 민족일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하여 벌써 4년 7개월이 되었으며 당사자 모두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본래 하나의 민족이자 한 뿌리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별개의 외국이 아닌 형제국이자 자국의 분신으로 바라보려 했습니다.
과연 유전학적으로 두 민족은 완벽히 같은 핏줄인지 언어적으로는 서로 통하는지 그리고 만약 한 뿌리에서 출발했다면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서로 다른 민족 정체성으로 갈라졌는지 상세하게 알아 보겠습니다.
1. 공동의 조상 고대 키예프 루스와 하나의 뿌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벨라루스는 모두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번영했던 중세국가 키예프 루스(Kievan Rus)를 자신들의 공통된 조상국가로 여깁니다.
북유럽에서 내려온 바이킹 전사 집단 바랑기아인들이 현지 동슬라브 원주민 부족들을 통합하여 세운 나라가 키예프 루스였습니다.
공통의 종교와 문자: 988년 블라디미르 1세 대공이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슬라브어 표기를 위한 키릴 문자를 도입했습니다.
고대 동슬라브어 사용: 당시 키예프 루스 주민들은 문법과 어휘의 뼈대를 공유하는 하나의 고대 동슬라브어를 사용하며 같은 종교적 정체성을 공유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두 민족이 중세 초기까지 동슬라브족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 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2. 두 민족이 결정적으로 갈라진 계기
하나였던 동슬라브 세계를 두쪽으로 영구히 갈라놓은 결정적인 사건은 13세기초 징기스칸 후손들이 이끈 몽골 제국의 침략이었습니다. 1240년 몽골 군대가 키예프 루스의 수도 키예프를 완전히 불태우고 멸망시키면서 두 지역의 역사는 완전히 다른 궤도로 접어들었습니다.
러시아의 길: 몽골의 굴레와 모스크바의 팽창
북동쪽의 숲 지대로 피신한 세력은 몽골 킵차크 칸국의 지배 아래에서 점차 힘을 길렀습니다.
이들이 바로 모스크바 대공국이었으며 훗날 몽골의 지배를 벗어난 뒤 전제군주제와 군국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며 거대한 러시아 제국으로 팽창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길: 가톨릭 서유럽 문화의 흡수
반면 남서쪽의 우크라이나 땅은 몽골세력이 물러난뒤 가톨릭 국가였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수백년 동안 서유럽 르네상스와 가톨릭 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폴란드식 법률과 유럽식 농노제 문화를 체득했습니다.
이 시기 폴란드 지주들의 가혹한 억압에 맞서 자치 공동체를 형성한 무장 자유민 집단이 바로 오늘날 우크라이나 민족혼의 상징인 카자크(코사크)였습니다.
3. 유전학적 분석: 혈통적으로 얼마나 가까운가
현대 유전인류학(DNA) 분석 결과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혈통적으로 대단히 가깝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동슬라브족 남성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Y염색체 Haplogroup R1a의 비율은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 중서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높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100% 똑같은 핏줄은 아닙니다.
러시아 북동부의 특성: 러시아인들은 북쪽으로 영토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현지의 토착 민족들과 타타르 몽골계 유전자가 상당 부분 섞였습니다.
우크라이나 남부의 특성: 우크라이나인들은 발칸반도의 남슬라브 민족들및 지중해 연안 흑해 원주민들의 유전적 영향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과 일본인 이상의 높은 혈통적 연결성을 가지고 있으나 수백년의 지리적 분리와 주변 민족과의 혼혈로 인해 서로 다른 고유한 유전적 차이를 형성했습니다.
4.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는 같은 말인가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어를 러시아어의 시골 방언 정도로 깎아내리곤 했으나 언어학적으로 두 언어는 엄연히 독립된 별개의 언어입니다. 문자 체계는 둘 다 키릴 문자를 사용하지만 발음과 철자법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휘적 유사도: 언어학계의 비교 연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와 약 62%의 핵심 어휘를 공유합니다. 반면 우크라이나어는 서쪽 이웃나라인 폴란드어와 무려 70% 이상의 어휘적 일치율을 보입니다.
상호소통의 비대칭성: 우크라이나인들은 오랜 소련 시절의 교육과 러시아 미디어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거의 완벽하게 알아듣고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이 말하는 고유 방송이나 대화를 30%에서 40% 이상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의 관계 혹은 독일어와 네덜란드어의 관계처럼 뿌리는 같으나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언어로 진화한 것입니다.
5. 역사적 상흔과 완전히 갈라선 민족 정체성
한 뿌리라는 러시아의 주장에 우크라이나인들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제국주의 시절과 소련 시절에 겪은 가혹한 수탈과 학살의 기억 때문입니다.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어를 공문서와 학교에서 쓰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하는 동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특히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소련 스탈린 정권의 강제 곡물 공출로 인해 우크라이나 농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홀로도모르(대기근 참사)는 형제의 나라라는 환상을 완전히 깨뜨린 민족적 비극이었습니다.
독립 이후 민주주의와 친서방 노선을 선택하려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2022년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으로 치달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의 형제 민족 주장은 천년 전 고대 키예프 루스의 역사적 출발점과 높은 유전적 유사성을 근거로 삼고 있으나 800년 동안 완전히 서로 다른 문화적, 언어적 궤적을 밟아온 우크라이나의 주체적 역사를 무시한 제국주의적 발상에 불과합니다.
한때 같은 요람에서 태어났을지라도 혹독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어난 우크라이나의 독립적 민족의식은 이제 그 어떤 힘으로도 러시아와 하나로 묶일 수 없는 확고한 자기들만의 국가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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