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미국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으며 그들을 구출하고자 외교적으로 노력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자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은 1980년 4월 군사력을 통한 기습 구출작전을 전격 승인했습니다. 그 작전명이 바로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이었습니다.
이에따라 세계 최강 미군의 정예 특수부대가 출동했으나 이란 사막의 모래폭풍과 기체결함 그리고 충격적인 공중 충돌사고로 인해 총격전 한번 시도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철수해야 했던 작전의 전말과 그 파장을 알아 보겠습니다.
1. 테헤란 미 대사관 점령과 444일 인질사태의 시작
1979년 11월 4일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따르는 이란의 급진 이슬람주의 대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담장을 넘어 난입했습니다.
미국이 이집트로 망명한 친미 팔레비 국왕의 암 치료를 이유로한 미국 입국을 허용하자 이에 격분한 이란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여 외교관과 경비병력등 수십 명을 인질로 잡은 것입니다.
이란 혁명 정권은 팔레비 전 국왕의 신병 인도와 미국이 동결한 이란 자산 반환을 요구하며 인질들을 장기간 억류했습니다.
재선을 앞두고 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외교적 압박과 경제 제재를 총동원했으나 사태가 수개월간 교착 상태에 빠지자 특수부대를 투입한 강제 구출작전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결단했습니다.
2. 독수리발톱 작전의 대담하고 정교했던 침투계획
미 국방부가 수립한 구출작전은 군사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이동거리가 긴 고난도의 작전이었습니다.사막 1 거점(Desert One) 집결: 오만만의 항공모함 니미츠호에서 이륙한 해군 RH-53D 시스탤리온 헬리콥터 8대와 아라비아반도 기지에서 출발한 공군 C-130 허큘리스 수송기 6대가 야간에 이란 남부의 외딴 사막 착륙지에 집결합니다.
연료 재보급과 병력 탑승: 수송기에 실어 온 항공유로 헬기들을 재급유하고 찰스 베크위드 대령이 지휘하는 정예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대원 120여 명을 헬기에 나누어 태웁니다.
외곽 은신처 이동과 기습공격: 헬기 편대는 테헤란 외곽의 비밀 은신처로 날아가 낮 동안 숨어 있다가 이튿날 밤 트럭을 타고 대사관을 기습하여 인질들을 구출한뒤 인근 비행장에서 대형 수송기를 타고 국외로 탈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작전의 성패는 최소 6대의 헬리콥터가 아무런 탈 없이 작전 지역에 도착해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에 달려 있었습니다.
3. 사막의 모래폭풍 하부브와 잇따른 헬기 고장
1980년 4월 24일 밤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예상치 못한 자연의 거대한 벽이 미군을 가로막았습니다.이란 사막 상공에서 갑작스럽게 마주친 미세하고 짙은 먼지 폭풍인 하부브(Haboob)가 항공기들에 문제를 야기 했습니다.항법장비 마비와 시야상실: 모래 먼지가 계기판과 환기구를 막으면서 조종사들은 계측기를 잃고 눈앞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채 공포 속에서 비행해야 했습니다.
헬리콥터들의 연속 이탈: 8대의 헬기 중 1대는 로터 날개 이상으로 사막에 불시착하여 버려졌고 또 다른 1대는 계기 고장과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항모로 되돌아갔습니다.
최소 필요 대수 미달: 사막 1거점에 간신히 도착한 6대의 헬기 중 1대마저 핵심 유압시스템이 완전히 고장나며 작전수행 가능 헬기가 5대로 줄어들었습니다.
최소 6대가 없으면 인질과 델타포스 대원들을 모두 태우고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현장 지휘관 베크위드 대령은 백악관과 통화끝에 작전 전격 취소와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4. 사막 1거점의 화염과 8명의 전사자
비극은 철수를 준비하던 어수선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사막 1거점 착륙지는 완전히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었습니다. 작전 도중 지나가던 이란 민간 버스가 발견되어 승객 40여 명을 억류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뒤이어 다가오던 유조차가 도주하려 하자 대전차 로켓으로 파괴하는등 현장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철수를 위해 헬리콥터 1대가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자리를 옮기던 중 연료를 가득 채운 C-130 수송기의 동체 날개에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수만 리터의 항공유가 사막 한복판에서 대폭발을 일으켰고 두 항공기는 거대한 불기둥으로 변했습니다. 이 참사로 해병대 헬기 조종사와 공군 승무원등 미군 장병 8명이 현장에서 불길에 휩싸여 전사하고 4명이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남은 대원들은 추가 폭발을 피해 급히 다른 수송기들에 나누어 타고 사막을 탈출해야 했으며 전사자들의 시신과 극비 작전문서및 온전한 헬리콥터 5대를 적지에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는 참담한 굴욕을 겪었습니다.
5. 작전 실패의 파장과 카터 정권의 몰락
다음 날 지미 카터 대통령은 TV 생중계를 통해 작전실패를 공식 발표하고 모든 책임은 군통수권자인 자신에게 있다고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이란 정부는 사막에 버려진 미군 헬기와 장병들의 유해를 전 세계 언론에 공개하며 미국의 패배를 조롱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실패는 이미 제2차 오일 쇼크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흔들리던 지미 카터 행정부의 무능함을 상징하는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결국 카터는 1980년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참패하여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이란은 카터에게 끝까지 모욕을 주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선서가 끝난지 정확히 20분 뒤인 1981년 1월 20일 444일 만에 인질 52명 전원을 석방했습니다.
6. 실패가 남긴 뼈아픈 교훈과 현대 특수전의 개혁
독수리발톱 작전의 참담한 실패는 미 군사조직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가 서로 다른 무전 주파수를 사용하고 지휘체계가 제각각이었으며 합동훈련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패배의 본질적 원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
미 의회와 국방부는 이 뼈아픈 참패를 교훈 삼아 군사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쳤습니다.
미 특수작전사령부(USSOCOM) 창설: 각 군에 흩어져 있던 특수부대를 하나의 단일한 지휘통제 체계 아래 통합 지휘하는 최고사령부를 창설 했습니다.
제160 특수작전 항공연대 (Night Stalkers) 창설: 육군 특수작전 요원들을 전문적으로 야간침투시키고 후퇴할 수 있는 야간 초저공 비행전문 특수 항공부대를 별도로 조직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넵튠 스피어)등을 수행했던 미군의 정밀하고 신속한 특수전 역량은 바로 1980년 이란 사막의 불길 속에서 치른 뼈아픈 실패의 대가 위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파로 미국과 이란은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단절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각종 경제 제재와 상호간의 갈등이 결국 전쟁으로 비화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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