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어떻게 한자문화권에서 멀어지게 되었나
흔히 한자문화권이라 하면 중국대륙과 대만을 비롯한 한중일 3국을 말합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도 한자를 사용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베트남입니다. 유일하게 동남아시아에서 한자 문화권(유교 문화권)에 속했던 나라인 베트남은 과거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를 국가의 공식문자로 사용했습니다.
한자가 언제 어떻게 베트남에 뿌리를 내렸으며 국가공문서와 과거시험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왜 라틴 알파벳 형태의 현재 문자(Chữ Quốc ngữ)로 전면 교체하게 되었는지와 현대 베트남어 속에 남아 있는 한자의 흔적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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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e, Vietnam |
1. 베트남에 한자가 전래된 시기와 역사적 배경
베트남에 한자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기는 기원전 111년 한나라 무제가 베트남 북부의 고대 왕국인 남월(남비엣)을 정복하고 9개의 군현을 설치했던 복속기(중국 지배기)부터입니다.
천년에 걸친 한화 정책: 기원전 111년부터 서기 938년 응오꾸옌 장군이 바익당강 전투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베트남은 무려 천년동안 중국왕조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습니다.
유학과 관료제의 도입: 이 긴 지배기간 동안 한자와 유교사상 및 한나라식 행정제도가 베트남 지배층과 엘리트 계층에 깊숙이 이식되었습니다.
독립 이후 리 왕조, 쩐 왕조, 레 왕조 등 베트남의 독자적인 왕조들이 들어선 뒤에도 한자는 여전히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의 공식문자로 군림했습니다.
2. 과거시험과 국가 공문서 속 한자의 위상
조선이나 고려가 한자를 공식문자로 삼았던 것처럼 베트남 왕조 역시 한자를 절대적인 정통문자로 취급했습니다.
과거제도와 유교 관료제
1075년 베트남 리 왕조는 수도 하노이에 문묘를 세우고 과거 시험을 실시했습니다.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사서삼경을 통째로 외우고 한시와 한문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해야 했습니다. 베트남의 지배층(사대부 계층)은 모두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고 쓰는 한문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국가 공문서와 사서의 한문 작성
왕실의 칙령, 외교문서, 호적대장, 사법 판결문등 국가의 모든 공식 행정문서는 100% 한문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베트남의 정통 관찬 역사서인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를 비롯한 수많은 문학작품과 왕실 비석들 역시 완벽한 정통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체적인 고유문자 쯔놈(Chữ Nôm)의 탄생
순수한 한문으로는 베트남 고유의 구어체를 다 표현할 수 없었기에 13세기 무렵 한자의 뜻과 음을 빌려 베트남어를 표기하는 독창적인 글자인 쯔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쯔놈은 한자보다 획수가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퍼지지 못했고 여전히 공식적인 국가문서는 정통한자가 독점했습니다.
3. 한자는 언제 왜 완전히 폐지되었는가
천년 넘게 베트남의 지배층을 지탱하던 한자는 19세기말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20세기초 민족 독립운동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식민당국의 문화 분리정책
1880년대 베트남을 무력으로 점령한 프랑스는 베트남인들이 중국의 유교문화와 한자 네트워크를 통해 단결하고 반프랑스 저항운동을 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프랑스는 전통 유학자 세력의 힘을 빼앗기 위해 1919년 응우옌 왕조의 과거 시험을 완전히 폐지했습니다.
동시에 17세기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가 베트남어 발음을 서양식으로 적기 위해 고안했던 라틴 알파벳 표기법인 새 문자를 학교교육과 공문서에 강제로 도입했습니다.
베트남 민족주의자들과 호찌민의 대중 계몽운동
역설적이게도 프랑스가 들여온 알파벳 표기법은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에게 최고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한자는 익히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알파벳 표기법은 며칠만 배우면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찌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문맹률이 90%에 달하던 민중들을 신속하게 계몽하고 항전문서를 퍼뜨리기 위해 알파벳 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결국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알파벳 형태의 문자를 국가의 유일한 공식 문자로 선포했고 이로써 한자는 베트남의 공식 문자 자리에서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4. 현대 베트남어 속에 남아있는 한자의 흔적
글자로서의 한자는 쓰이지 않지만 베트남어의 근간에는 여전히 한자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휘의 70%를 차지하는 한자어: 한국어 단어의 과반수가 한자어이듯 현대 베트남어 단어의 약 70%가 한자에서 기원한 한월어(Hán-Việt)입니다.
한국어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발음:
주의(注意) ➔ chú ý (추 이)
국가(國家) ➔ quốc gia (꾸옥 자)
준비(準備) ➔ chuẩn bị (추언 비)
결혼(結婚) ➔ kết hôn (껫 혼)
문화적 흔적과 사찰의 풍경: 하노이의 문묘나 유서깊은 사찰및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의 제사상과 현판에는 여전히 붓글씨로 쓴 한자가 웅장하게 걸려 있습니다. 또한 구정(뗏) 명절이 되면 복(福)이나 록(祿) 같은 글자를 한자나 한자 형태를 모방한 알파벳 캘리그래피로 적어 문 앞에 붙이는 풍습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5. 방대한 고문서의 방치로 인한 역사단절
과거 베트남의 공식 역사서를 비롯한 민간의 수많은 문서들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원문을 직접 읽고 비판적으로 해석할수 있는 국민이 거의 없다보니 과거에 번역된 소수의 현대어 번역본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자가 오역을 하거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맞추어 내용을 왜곡하더라도 일반 국민이나 젊은 역사가들이 원전의 오류를 직접 바로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현재의 베트남은 소수의 전문 연구기관과 해외 학술교류에 힘입어 옛 역사서를 간신히 해독해 내고 있으나 심각한 인력부족과 여러문제로 과거의 베트남 역사와의 단절이라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글자를 바꾸어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문맹률을 빠르게 없애 실용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대신 과거 천년의 조상들 기록을 스스로 읽지 못하게된 베트남의 현실은 문자개혁이 남긴 거대한 빛과 그림자를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부작용이 있음에도 어려운 한자를 버린 베트남의 문자개혁은 대중계몽과 문맹퇴치에 기여하였으며 라틴 알파벳을 기본으로 하는바 디지털시대의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비록 눈에 보이는 한자는 사라졌지만 베트남인들이 입으로 말하는 언어의 어휘와 사고방식 깊은 곳에는 여전히 한자 문화권의 깊은 유산이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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