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Ethiopia)는 어떻게 바다를 잃고 내륙국가가 되었을까
[세계의 영토 변천사] 에티오피아(Ethiopia)는 어떻게 바다를 잃고 내륙국가가 되었을까
우리에게 친숙한 아프리카 국가가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군대를 직접 파병해준 나라 바로 에티오피아 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두번째로 많은 나라이자 동아프리카의 강국인 에티오피아는 오늘날 바다가 없는 완벽한 내륙국가입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과거 수천년 동안 홍해를 접하며 활발한 해상 무역을 펼치던 거대한 해양 문명국가였습니다.
풍요로운 바다를 품고 있던 에티오피아가 어떻게 바닷길을 완벽히 잃어버리고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내륙국가가 되었는지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고대 해양 제국에서 시작된 바다의 역사
에티오피아는 고대 악숨(Aksum) 제국 시절부터 홍해 연안의 중요 항구인 마사와와 아사브 등을 거점으로 삼아 이집트 및 로마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와 교역을 이어왔습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며 서구 강대국들의 침략과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과정에서 홍해 연안 지역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2. 연방제와 병합으로 다시 찾았던 바닷길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탈리아가 물러난 뒤 에리트리아의 거취가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유엔은 1952년 이탈리아의 전 식민지였던 에리트리아를 에티오피아와 하나의 연방으로 묶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어 1962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에리트리아를 에티오피아의 정식 주로 완전히 병합해 버렸습니다.
3. 30년에 걸친 참혹한 내전과 피의 역사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강제 병합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에리트리아 주민들은 1961년부터 에티오피아 정부에 맞서 무장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30년 동안 이어진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황정이 무너지고 들어선 멩기스투 공산 군사정권이 막대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에리트리아의 독립 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했습니다.
4. 1993년 에리트리아의 독립과 바다의 상실
공산 정권이 무너진 직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에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1993년 유엔의 감시 아래 에리트리아에서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주민의 99%가
5. 바다를 잃은 에티오피아의 고민
독립 직후에는 두 나라가 항구를 함께 사용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듯했으나 1998년 국경선 문제로 다시 국경 전쟁을 치르면서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났습니다.
바다를 잃은 에티오피아의 경제적 타격은 엄청났습니다. 인구 1억 2천만 명이 넘는 이 대국은 수출입 물동량의 90% 이상을 이웃 나라인 지부티의 항구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두번째로 많은 나라이자 동아프리카의 강국인 에티오피아는 오늘날 바다가 없는 완벽한 내륙국가입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과거 수천년 동안 홍해를 접하며 활발한 해상 무역을 펼치던 거대한 해양 문명국가였습니다.
풍요로운 바다를 품고 있던 에티오피아가 어떻게 바닷길을 완벽히 잃어버리고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내륙국가가 되었는지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고대 해양 제국에서 시작된 바다의 역사
에티오피아는 고대 악숨(Aksum) 제국 시절부터 홍해 연안의 중요 항구인 마사와와 아사브 등을 거점으로 삼아 이집트 및 로마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와 교역을 이어왔습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며 서구 강대국들의 침략과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과정에서 홍해 연안 지역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탈리아가 홍해 연안 지대를 침략하여 이 지역 에리트리아(Eritrea)를 1882년 식민지로 합병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에티오피아 본토는 바다로 나가는 길목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게되었고 에티오피아 본토와 에리트리아는 서로 다른 나라라는 이질감을 점차 갖게 되었습니다.
2. 연방제와 병합으로 다시 찾았던 바닷길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탈리아가 물러난 뒤 에리트리아의 거취가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유엔은 1952년 이탈리아의 전 식민지였던 에리트리아를 에티오피아와 하나의 연방으로 묶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어 1962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에리트리아를 에티오피아의 정식 주로 완전히 병합해 버렸습니다.
이로써 에티오피아는 긴 홍해 해안선과 귀중한 항구들을 다시 자국의 영토로 확보하며 완벽한 해양국가의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참고로 이시기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참전할 군대를 파병할 당시인 1951년 4월에는 자국 항구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이웃나라 지부티(Djibouti)항 까지 육로로 이동해서 그곳 항구에서 미군 수송선을 탑승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머나먼 이동경로를 거쳐서 참전하여 주신 그분들의 희생에 다시한번 감사하게 됩니다.
3. 30년에 걸친 참혹한 내전과 피의 역사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강제 병합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에리트리아 주민들은 1961년부터 에티오피아 정부에 맞서 무장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30년 동안 이어진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황정이 무너지고 들어선 멩기스투 공산 군사정권이 막대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에리트리아의 독립 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했습니다.
하지만 에리트리아 반군은 끝까지 항전하였고 마침내 1991년 에티오피아 내부의 반군 세력들과 손을 잡고 공산 독재정권을 완벽히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4. 1993년 에리트리아의 독립과 바다의 상실
공산 정권이 무너진 직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에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1993년 유엔의 감시 아래 에리트리아에서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주민의 99%가
압도적으로 독립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오랜 내전에 지쳐 있던 에티오피아 신정부는 이 투표결과를 공식 수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 국가가 되었고 에티오피아가 가지고 있던 홍해 해안선 전체가 에리트리아의 영토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 국가가 되었고 에티오피아가 가지고 있던 홍해 해안선 전체가 에리트리아의 영토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에티오피아는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육지에 갇힌 내륙국가로 전락했습니다.
5. 바다를 잃은 에티오피아의 고민
독립 직후에는 두 나라가 항구를 함께 사용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듯했으나 1998년 국경선 문제로 다시 국경 전쟁을 치르면서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났습니다.
바다를 잃은 에티오피아의 경제적 타격은 엄청났습니다. 인구 1억 2천만 명이 넘는 이 대국은 수출입 물동량의 90% 이상을 이웃 나라인 지부티의 항구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지불하는 막대한 항구 이용료는 에티오피아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에티오피아 정부는 바다로 나갈 길목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들과 다각도의 외교적 시도를 펼치고 있으나 영토와 주권이 얽혀 있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에티오피아 정부는 바다로 나갈 길목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들과 다각도의 외교적 시도를 펼치고 있으나 영토와 주권이 얽혀 있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보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실제로는 섬이라고도 할수 있는 우리 한국의 위치는 큰 행운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