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납치된 어머니를 구하라

몽골의 초원지대
몽골의 초원지대

오늘날 몽골과 한국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몽골인들은 한국에 아주 우호적입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몽골은 28년에 걸친 6차의 대규모 침공으로 고려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그때 잡혀간 고려의 포로들은 "고려사"에 기록된 공식 기록으로만 해도 20만명 이지만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때 일어났었던 실제 사건으로 고려사 김천열전(金遷列傳)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라가 보겠습니다.

몽골인들중에 DNA Test를 해보면 일부 몽골인들의 혈통이 한국인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이들은 아마 그때 잡혀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후손들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고려사에 수록된 김천열전(金遷列傳)의 주인공 김천(金遷)의 생애는 몽골 침략기 고려 백성들의 끔찍한 고난과 한 인간의 초인적인 가족애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1. 열다섯 살에 겪은 가족의 해체


김천은 명주 오늘날의 강릉지역 아전(衙前)으로 어릴 적 이름은 김해장(金海莊)입니다.

고종 말년 몽골군이 침입하여 어머니와 남동생 김덕린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김천의 나이는 불과 15세였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통곡하다가 포로로 끌려간 고려인들이 몽골로 가는 길에서 무수히 죽어 나갔다는 소문을 듣고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여 상복을 입고 3년상을 마쳤습니다.


2. 14년만에 날아온 어머니 소식과 거듭된 좌절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어느날 원나라 백호 벼슬을 가진 습성(習成)이라는 사람이 원나라에서 건너와 시장에서 강원도 명주 사람을 3일 동안 애타게 찾았습니다. 

마침 강원도 정선사람 김순이 그 소문을 듣고 습성을 찾아가서 왜 명주사람을 찾느냐고 물으니 습성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원나라 동경(지금의 요령성 요양시) 지역에 김씨성을 가진 여인이 있는데 자신은 본래 명주 사람이고 아들 해장이 있다고 하면서 나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당신이 해장을 아시오?"

김순이 "김해장이 내 친구요"라고 대답하며 편지를 받아와서 친구 김천을 찾아가 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참혹한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살아서 어느고을, 어느동네, 누구네 집의 노비가 되어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추워도 입지 못하며 낮에는 밭을 매고 밤에는 방아를 찧으며 온갖 고생을 다 겪고 있으니 그 누가 나의 생사를 알리요?"

김천은 편지를 보고 통곡하였고 밥을 먹을 때마다 목이 메어 음식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를 돈으로 구출하려 했으나 집이 가난하여 재물이 없었기에 남에게 돈을 빌린뒤 수도 개경으로 올라가 어머니를 찾으러 가겠다고 출국허가를 받기위해 조정에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고려 조정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이후 충렬왕이 원나라에 입조할 때 그 일행과 같이 갈수있도록 몽골행을 간청하였으나 조정은 또 다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3. 기적적인 인연과 북행길


김천이 개경에 오래 머무는 동안 옷은 다 해지고 양식마저 떨어져 우울하고 막막하던 차에 길에서 고향 승려 효연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김천이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사정을 말하자 효연이 "내 형인 천호(千戶) 벼슬하는 효지(孝至)가 지금 동경으로 가니 네가 따라갈 수 있을것이다"라고 일러주었고 김천은 즉시 그에게 동행을 부탁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김천을 말리며 "네가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지 이미 5년이 지났는데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 어찌 아느냐? 게다가 불행히 중도에 도적을 만나면 목숨과 보물을 모두 잃을 뿐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김천은 "차라리 가서 뵙지 못할지언정 어찌 내 몸과 목숨을 아끼겠느냐?" 라고 답하며 기어이 효지를 따라 동경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본국 통역관인 별장 공명과 함께 북주 천로채(北州  天老寨)를 찾아가서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어머니가 살아계신 곳을 찾아냈습니다.


4. 적진에서 이루어진 19년만의 모자 상봉


몽골군 요좌의 집에 이르렀을 때 한 노파가 걸어 나와 절을 했습니다. 옷은 메추라기가 매달린 것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에는 새까맣게 때가 가득 끼어 있어서 김천은 눈앞의 노파가 자신의 어머니인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통역관 공명이 "당신은 고려 어디에서 온 사람인가?" 라고 묻자 노파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본래 명주 호장 김자릉의 딸이고 친오빠인 진사 김룡은 과거에 급제했고 저는 호장 김종연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으니 해장과 덕린이옵니다. 
덕린은 저와 같이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지 이미 19년이 되었고 지금 서쪽 이웃인 백호 천로의 집에서 노비로 살고 있습니다. 어찌 오늘 고국 사람을 다시 볼 줄 알았겠습니까?"

그제야 모든 사실을 깨달은 김천이 엎드려 절하며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자 어머니가 김천의 손을 부여잡고 "네가 진정 내 아들이냐?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라며 통곡했습니다.


5. 은 55냥으로 구출하다


마침 주인 요좌가 외출하고 없어 김천은 당장 어머니를 구출하지 못하고 동경으로 돌아와 별장 수룡의 집에서 한 달을 머물렀습니다. 다시 수룡과 함께 요좌의 집으로 가서 속량하기를 간청하였으나 요좌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김천이 눈물로 빌고 또 빈 끝에 마침내 은 55냥을 주고 어머니를 구출해 냈습니다. 김천은 동생도 구출하고자 했으나 준비한 돈이 부족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만 먼저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김천은 구출한 어머니를 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뒤따랐습니다. 둘째 아들 덕린이 동경까지 배웅하며 "어머니! 무사히 돌아가세요! 무사히 돌아가세요! 지금 비록 따라가지 못하지만 하늘의 축복이 있다면 반드시 다시 만날 기약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울며 작별을 고했습니다.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때마침 중찬 김방경이 원나라 수도 북경에서 고려로 돌아가던중 동경에 이르러 김천 모자를 불러서 얘기를 듣고 그 지극한 효심에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총관부에 말하여 통행증과 역참의 말을 내주어 이들을 호송하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일행이 고향 명주에 다다랐을 때 아버지 김종연이 소식을 듣고 진부역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19년만에 부부가 살아서 다시 만나니 기쁨을 감출수 없었고 김천이 술잔을 들어 올린뒤 뒤로 물러나와 소리 내어 통곡하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외할아버지 김자릉은 나이가 79세였는데 잃어버린 딸을 다시 보고 너무 기뻐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6. 동생의 귀환


그 후 다시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동생을 노비로 부리던 천로의 아들이 덕린을 데리고 고려로 찾아왔고 김천은 은 86냥을 지불하여 마침내 동생마저 구출해 냈습니다. 동생은 25년만에 고향에 오게된 것입니다. (동생이 오게된 경위는 김천열전에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인편을 통하여 수차레의 협상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몇년 지나지 않아 김천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사방에서 빌렸던 빚을 모두 갚고 마침내 온전하게 하나로 뭉친 가족과 함께 평생토록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며 살았습니다.

이 기록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힘없는 민중들에게 제일 큰 피해가 간다는 슬픈 사실과 함께 비참한 전쟁 속에서도 강인한 의지와 가족애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고려시대 최고의 인간승리 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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