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의 과거와 현재

Okinawa, Japan
Okinawa, Japan

일본 열도 최남단에 위치한, 여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오키나와는 한국인들이 많이 여행하는 여행지중의 하나입니다. 본래 류큐왕국이라는 독립된 주권국가였으며 면적 2,200km², 인구 146만명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제주도 면적의 1.2배 크기입니다.

본토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자적인 해양 문화를 꽃피웠던 이곳이 어떻게 일본의 영토가 되었는지 유전적, 언어적 뿌리는 본토 일본인과 같은지 그리고 오늘날 독립을 향한 움직임은 존재하는지등에 관해 알아봅니다.


1. 인종적, 유전적 뿌리는 같은가


오키나와 원주민인 류큐인과 일본 본토인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친척관계이나 완벽히 같은 민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유전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열도 주민들은 수렵 채집을 하던 조몬인과 대륙에서 건너와 농경을 전파한 야요이인의 혼혈로 형성되었습니다.

본토 일본인들은 한반도와 대륙에서 건너온 야요이인의 유전적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게 나타납니다. 반면 오키나와 사람들은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고대 원주민인 조몬인의 유전적 특성이 훨씬 더 짙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토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사실이나 오랜 세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격리되어 살아왔기에 신체적 특징이나 유전적 배열에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자적인 소수민족으로 분류하는 것이 인류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2. 본토 사람들과 말은 통했었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과거 류큐왕국 사람들과 일본 본토 사람들은 통역없이는 대화가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류큐어와 일본어는 모두 일본어족이라는 하나의 큰 어족에 속해 있어 수천년전 고대에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늦어도 7세기경부터 두 언어가 완전히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발음과 어휘및 문법체계가 전혀 다르게 진화했습니다.

오늘날 오키나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통 류큐어인 우치나아구치는 본토 일본인이 들으면 스페인 사람이 프랑스어를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운 완전한 외국어에 가깝습니다.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정부의 가혹한 표준어 강요정책과 방언 철폐운동으로 인해 현재 고유의 류큐어는 극소수의 노년층만 구사할수 있을 정도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3. 독립국 류큐는 어떻게 일본에 합병되었나


류큐왕국은 중국 명나라,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잇는 해상 중계무역의 중심지로 찬란한 번영을 누렸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1609년 일본 규슈남부의 무사 집단인 사쓰마번이 류큐를 무력으로 침공하면서부터였습니다. 사쓰마번은 류큐 국왕을 굴복시키고 막대한 무역이익을 착취하면서도 중국과의 조공무역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겉으로는 류큐의 독립국 지위를 그대로 두는 기형적인 이중 지배체제를 강요했습니다.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 메이지정부는 1872년 류큐왕국을 류큐번으로 일방적으로 강등시켰습니다. 그리고 1879년 군대와 무장 경찰을 동원해 왕궁인 슈리성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마지막 국왕 쇼타이 왕을 도쿄로 압송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를 류큐처분이라고 부르며 이 폭력적인 사건을 끝으로 500년 역사의 자랑스러운 독립국 류큐왕국은 오키나와현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제국에 완전히 흡수 병합되었습니다.

4. 오키나와 사람들의 복잡한 민족 정체성

현재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당신은 일본인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지역 언론인 류큐신보나 오키나와 타임스 등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정체성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들의 복잡한 심리가 정확히 드러납니다.

  • 오키나와인이자 동시에 일본인이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선택하는 절충형 정체성입니다. 법적인 국적은 일본임을 인정하지만 문화적 뿌리는 오키나와에 있다는 뜻입니다.

  • 나는 오키나와인이다: 두 번째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자신을 본토 일본인과 명확히 선을 긋는 강한 지역 민족주의를 보여줍니다.

  • 나는 일본인이다: 오직 일본인이라고만 대답하는 비율은 놀랍게도 가장 적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본토 사람들을 야마토 사람이라고 부르고 스스로를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확고히 구분해서 부릅니다.


5. 끝없는 차별과 오늘날의 독립 움직임


일본에 강제 병합된 이후 오키나와 사람들은 철저한 2등국민 취급을 받으며 잔혹한 차별과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특히 2차대전 말기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일본군이 본토 방어를 위한 시간벌기용 방패로 오키나와 주민들을 내몰았고 수십만 명의 민간인에게 옥쇄라는 명분 아래 집단자결을 강요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전후 미군통치기를 거쳐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으나 현재까지도 주일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오키나와 좁은 땅에 집중되어 있어 주민들의 고통과 분노가 극심합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지 27년간 오키나와는 미국 점령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흔과 구조적 차별을 바탕으로 오늘날 오키나와 내부에서는 류큐 독립운동이 분명히 실재하고 있습니다. 류큐민족 독립 연구학회 같은 지식인 단체들이 류큐 공화국의 부활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며 유엔에 원주민 권리보호와 자기결정권을 거듭 호소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완벽한 분리 독립국을 세우자는 여론이 주민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군사기지 강요정책에 저항하며 오키나와만의 강력한 고도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정치적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오키나와 사회 기저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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