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에서 영어를 안쓰는 지역이 있다?

Puerto Rico
Puerto Rico


캐나다를 다양한 문화가 각자의 색을 유지하는 모자이크(Mosaic) 사회라고 부르고 미국을 모든 이민자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녹아드는 멜팅팟(Melting Pot) 즉 용광로라고 부릅니다.

이 때문에 캐나다에는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쓰는 퀘벡주가 존재하는 반면 미국은 오직 영어만 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국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영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한 적이 없으며 미국영토 안에도 캐나다 퀘벡처럼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특정 지역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떤 지역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독자적인 언어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이질적인 언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1. 푸에르토리코: 완벽한 스페인어 중심의 미국 자치령


미국 영토 내에서 캐나다 퀘벡과 가장 유사한 언어적 독자성을 지닌 곳은 바로 카리브해에 위치한 미국의 자치령 푸에르토리코입니다.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 결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스페인 문화와 언어가 완벽하게 뿌리내린 곳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초기에 영어를 강제하려 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실패했습니다.

  • 완벽한 스페인어 공교육 시스템: 이곳 주민들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미국 여권을 사용하지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공립학교의 정규 수업은 스페인어로 진행됩니다.


  • 사법및 행정의 기본 언어: 비록 영어가 공동 공식언어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나 인구의 95%이상이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합니다. 지방 법원 판결문, 의회 회의록, 경찰의 조서 작성 역시 스페인어로 작성되는 완벽한 스페인어 중심 사회입니다.


심지어 미국 의회에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의 51번째 정식 주로 편입하려는 법안이 올라올 때마다 공화당 보수파 의원들이 영어전용 원칙을 내세우며 반대할 정도로 언어문제는 이곳의 핵심 정치적 쟁점입니다.


2. 하와이: 주 헌법이 인정한 유일한 공식 이중언어 주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주 헌법상 공식 언어로 명확히 채택한 유일한 곳은 하와이주입니다.

과거 독립된 왕국이었던 하와이는 1893년 미국계 농장주들의 쿠데타로 무너진뒤 미국에 강제 병합되었습니다. 이후 미국 정부는 하와이어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고 원주민 언어는 소멸 직전의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 원주민 문화 부흥 운동: 1970년대 거세게 일어난 원주민 권리회복 운동의 결실로 하와이는 1978년 주 헌법을 전면 개정하여 하와이 토착어를 영어와 함께 주 공식 언어로 격상시켰습니다.


  • 몰입형 원주민어 학교 운영: 현재 하와이 주 정부는 도로 표지판과 공공기관 현판에 하와이어를 반드시 병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푸나나 레오라는 이름의 하와이어 몰입교육 학교를 설립하여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 과목을 오직 하와이어로만 가르치는 특별한 공교육 시스템을 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3. 뉴멕시코와 루이지애나: 멕시코와 프랑스의 유산 


하와이처럼 주 전체의 공식 언어로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헌법과 법률을 통해 특정언어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실질적인 이중언어 시스템을 가동하는 주들도 있습니다.

뉴멕시코주의 강력한 스페인어 권리 보장


뉴멕시코주는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에 편입되기 전까지 멕시코의 영토였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존중하여 주 헌법에 스페인어 사용자의 권리를 명시해 두었습니다. 

배심원단 자격 심사에서 영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주 정부가 시민을 차별할수 없게 강력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선거 투표용지와 주요 법적 통지는 반드시 두 언어로 함께 인쇄되어야 하며 실질적으로 주 정부 행정에서 스페인어가 영어와 대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루이지애나주의 프랑스어 문화 보존정책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는 독특한 케이준(Cajun) 문화와 아카디아 프랑스어 전통이 깊게 남아있는 남부의 중심지입니다.

주 정부는 교육 기관이나 행정 관청에서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규정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루이지애나 프랑스어 발전을 위한 주 정부 산하 특별 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법원이나 공공기관에서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며 이중언어 학교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4. 괌과 아메리칸 사모아: 태평양 자치령의 고유 언어 


미국 본토를 벗어난 태평양의 방대한 미국 자치령들 역시 영어와 함께 자신들의 토착 언어를 공식 언어로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 괌과 북마리아나 제도: 서태평양의 주요 군사 요충지인 괌은 영어를 기본으로 쓰지만 원주민 언어인 차모로어를 공식 언어로 함께 지정하여 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 아메리칸 사모아: 남태평양에 위치한 아메리칸 사모아는 주민의 90% 이상이 사모아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며 의회 토론과 지방법원 재판도 대부분 사모아어로 진행되는등 태평양 고유의 문화를 미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5. 미국 연방정부에 공식 국어가 없는 이유


이토록 다양한 언어가 공존할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연방헌법이나 연방법률 어디에도 영어를 미국의 공식 국가 언어로 규정하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초기부터 영국, 독일, 네덜란드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모여 세운 나라였기에 특정 언어를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보았습니다.

물론 20세기 이후 히스패닉 이민자가 급증하자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영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려는 English Only 운동이 꾸준히 시도되었으나 매번 연방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겉보기에는 영어를 중심으로 모든 이민자가 하나로 녹아드는 거대한 용광로처럼 보이지만 그 거대한 냄비 속에는 푸에르토리코의 스페인어, 하와이의 원주민어,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어처럼 완벽히 녹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적 자치권을 굳건히 유지하는 다문화의 거대한 조각들이 살아있는 복합적인 사회입니다.

미국 관련글: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잉글랜드 vs 스코틀랜드 + 웨일스의 역사적 갈등

유럽 속의 외로운 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는 왜 고립되었을까?

"아파르트하이트" 철폐 후 남아공에는 진짜 백인 역차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