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최악의 참패 임팔작전과 일본군 사령관의 무모한 광기
오늘은 2차대전중 일어난 전투중 가장 우스꽝스러운 전투 이야기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은 수많은 패배를 겪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엽기적이고 비참한 자멸의 역사로 손꼽히는 전투가 있습니다. 바로 1944년 버마(오늘날 미얀마)와 인도의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임팔작전(Battle of Imphal)입니다.
완벽한 보급이라는 전투의 기본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채 일본군 제15군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 중장의 무모한 아집으로 수만명의 병사들이 굶주림과 전염병 속에서 목숨을 잃었던 비극의 전말과 그 황당한 실패 스토리를 알아봅니다. (무타구치 렌야, 일본군 중장, 1888-1966)
1. 임팔작전의 배경과 무타구치 렌야의 헛된 야망
1944년 초 태평양 전쟁의 전세는 이미 연합군 쪽으로 크게 기울고 있었습니다.
버마 전선에서도 영국군과 미국군이 중국 국민당 정부를 지원하는 보급로를 열기 위해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버마 방면을 담당하던 일본군 제15군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는 전세를 단번에 뒤집겠다며 대담한 공격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험준한 친드윈강과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아라칸 산맥의 밀림을 건너 인도 동북부의 핵심 거점인 임팔을 점령하고 여세를 몰아 인도 전역을 해방시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작전의 의도는 그럴듯해 보였으나 현장의 지형과 군사적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망상에 가까운 계획이었습니다.
2. 징기스칸 작전: 소와 양을 몰고 정글을 건너라
임팔 작전이 군사 역사상 최악의 코미디이자 비극으로 불리는 핵심 이유는 상상을 초월하는 보급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험준한 정글과 가파른 산악 지대에는 트럭이나 보급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전혀 없었습니다.
참모들과 부하 사단장들이 식량과 탄약 보급이 불가능하다고 결사반대하자 무타구치는 역사책에서 본 징기스칸의 원정 방식을 흉내낸 이른바 징기스칸 작전을 명령했습니다.
가축을 이용한 짐 운반: 현지 버마 농민들에게서 물소, 말, 소, 양 등 수만 마리를 강제로 징발하여 포탄과 군수 물자를 싣고 이동하도록 했습니다.
살아있는 식량계획: 물자를 운반하다가 식량이 떨어지면 그 소와 양을 잡아먹으며 진격하면 보급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된다는 황당한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물소들은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지 못하고 굴러 떨어졌으며 정글의 맹수 소리와 총포 소리에 놀란 가축들이 물자를 등에 실은 채 계곡 아래로 달아나거나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습니다.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군수 물자의 태반이 정글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3. 정신력 지상주의와 굶주림의 백골 가도
보급이 완전히 끊긴 채 간신히 임팔 외곽에 도달한 일본군은 튼튼한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영국군과 인도군을 마주했습니다.
영국군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도 공중 수송기를 통해 매일 신선한 식량과 포탄을 여유롭게 보급받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군은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탄약이 떨어지고 굶주림에 쓰러져 갔습니다. 사단장들이 식량과 보급을 애타게 요청하자 무타구치 렌야는 일본의 군인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믿기 힘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초식동물 훈계: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인데 정글에 풀과 나무가 이렇게 우거져 있는데 왜 식량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느냐며 정글에 널려진 식물과 열매를 먹으며 싸우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소위 초식동물론 이었습니다.
사단장의 항명: 비참한 상황을 견디다 못한 제31사단장 사토 고토쿠 중장은 부하들을 더 이상 죽게할 수 없다며 일본군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령관 명령에 대한 불복종과 무단 후퇴를 감행했습니다.
우기가 시작되자 정글은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했고 말라리아, 이질, 장티푸스 등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
궐했습니다. 결국 후퇴 명령이 떨어졌으나 퇴로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부상당하고 굶주린 수만 명의 병사들이 빗속에서 쓰러져 숨졌고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일본군 시체들이 줄지어 늘어서면서 이 퇴각로는 백골가도(白骨街道)라는 끔찍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4. 참혹한 사상자 수치와 버마 전선의 완전한 붕괴
임팔 작전에 투입된 약 9만 명에 가까운 일본군 정예 병력중 살아서 온전히 돌아온 자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전투 중 입은 전사자보다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은 아사자와 병사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목숨을 잃은 일본군 3만명을 포함 총 6만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했습니다.
이 괴멸적인 타격으로 인해 일본군은 버마 전선의 방어 역량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버마 전역을 탈환했고 인도와 버마를 발판 삼아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결정적인 승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무타구치 렌야는 광복군이 일본군내에 심어놓은 X-man 이라는 농담도 있습니다.
5. 패장 무타구치의 뻔뻔한 변명
수만 명의 젊은이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총책임자 무타구치 렌야는 최전선에 가보지도 않은채 후방의 안전한 사령부에서 술판을 벌이며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작전 실패후 본국으로 소환되어 예편되었으나 그는 패전 이후에도 전범 재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도쿄에서 개인 식당을 운영하며 천수를 누린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작전은 완벽했으나 부하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정신력이 나약하여 실패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장례식장에서까지 부하들의 무능을 탓하는 유인물을 조문객들에게 배포하라는 유언을 남겨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사회의 거센 비난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1944년의 임팔작전은 근대적인 무기와 보급체계 대신 비과학적인 사고와 군국주의적 정신 승리만을 강요하던 일본 제국주의 군벌이 빚어낸 가장 끔찍한 실패작이었습니다.
적군에 의해 패배하기 전에 무능한 지휘관의 독선과 자연의 힘 앞에 스스로 무너져 내린 임팔의 비극은 군사 전략에서 보급과 현실 인식이 결여될 때 어떤 지옥이 펼쳐지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역사의 경고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