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자체 화폐와 독자적인 법률이 있으며 백인들만의 순수한 혈통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 오라니아는 언제 어떻게 세워졌으며 과연 어떤 법적 근거로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 사정을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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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ania, South Africa |
1. 사막에서 시작된 아프리카너의 도피처
오라니아의 시작은 남아공의 백인 소수 정권이 무너지기 직전이던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넬슨 만델라의 석방과 함께 흑인 다수 정부의 집권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네덜란드계 백인 후손인 아프리카너(보어인)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극심한 공포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설립 주도자: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로 불리는 전 남아공 총리 헨드릭 페르부르트(Hendrik Verwoerd)의 사위이자 신학대학 교수였던 카렐 보쇼프(Carel Boshoff)가 주도했습니다.
공동체부지 매입: 1991년 보쇼프 교수와 일단의 아프리카너 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댐 건설 노동자들을 위해 지었다가 버려둔 채 방치되어 있던 유령 마을 오라니아의 부지를 미화 약 58만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초기 정착: 당시 겨우 40여명의 백인 가족들이 황량한 사막 지대에 텐트와 허름한 건물을 고쳐서 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오라니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2. 오라니아의 면적과 인구규모
설립 초기 수십 명에 불과했던 이 작은 마을은 30여 년 만에 눈에 띄는 규모의 자치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토지 면적: 초기 약 3km² 규모로 시작했으나 주변 농경지와 황무지를 지속적으로 추가 매입하여 현재는 9km²로 서울시 중구(면적 10km²) 정도의 넓이로 확장 되었습니다.
인구증가 추세: 설립 초기 수십 명에서 출발하여 2010년대 중반 1,000명을 넘었고 현재는 약 3,000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주의 가속화: 남아공 대도시의 극심한 치안불안과 정전사태 및 실업난에 지친 보수 성향의 백인들이 자녀교육과 안전을 이유로 해마다 수백명씩 오라니아로 이주해 오고 있습니다.
3. 어떤 법적 근거가 있나
흑인 인권의 상징인 남아공 땅에서 오직 백인만 거주하는 마을이 어떻게 강제 철거되지 않고 합법적으로 존속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오라니아의 존속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 제235조에 법적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문화적 민족 자결권 보장 조항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흑인 정부는 백인 극우세력의 무장반란과 내전을 막기 위해 신헌법에 독특한 타협 조항을 넣었습니다.
바로 남아공 영토내에서 공통된 문화와 언어적 유산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독자적인 문화적 영토적 자결권을 추구할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사유지 소유권과 주식회사 형태의 운영
오라니아는 공식적인 독립국가가 아니라 사유지를 관리하는 주식회사 형태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땅과 건물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소유이고 거주민들은 회사의 주식을 사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마을에 들어와 살기 위해서는 주민위원회의 엄격한 배경 심사를 거쳐야 하며 아프리카너 문화와 언어(아프리칸스어)를 완벽히 준수해야만 주주이자 주민으로 자격을 인정 받을 수 있어서 인종차별 금지법의 허점을 교묘히 우회하고 있습니다.
4. 독자적인 자립 시스템과 철저한 백인노동 원칙
오라니아를 지탱하는 가장 독특한 철학은 자립 노동(Self-reliance)입니다.
과거 남아공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허드렛일과 육체노동을 시키고 자신들은 지배층으로 군림했으나 오라니아는 흑인 노동력을 일체 고용하지 않습니다.
백인 육체노동: 거리 청소, 쓰레기 수거, 농사, 건물 공사 등 모든 고된 노동을 오직 백인 주민들이 직접 수행합니다. 흑인에게 의존하는 순간 다시 인종 갈등이 시작된다는 신념 때문입니다.
자체 통화 오라(Ora): 남아공 랜드화와 일대일로 연동되는 자체 지역 화폐 오라(Ora)를 발행하여 마을 내부 상점과 내부 기업에서 유통하고 있습니다.
재생 에너지와 농업: 태양광 발전 시설과 오렌지강을 끌어온 최신식 관개 농업을 통해 피칸(Pecan)등의 견과류와 과일을 재배하여 유럽과 중국등으로 대규모 수출하며 놀라운 경제적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5. 세계적 조롱과 비판
1991년 New York Times는 오라니아에 대하여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모여사는 유령마을(ghost town)이라고 비판한적 있으며 1994년 Los Angeles Times는 관용이 통하지 않는 요새(bastion of intolerance)라고 비판 했습니다.
그 외에도 세계각국의 인권운동가, 인권단체및 언론으로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6. 오라니아의 미래 전망
오라니아의 앞날에는 여전히 거대한 불안과 모순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확장하길 원하지만 그들의 뜻대로 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습니다
급진 흑인 정당들의 거센 폐쇄 압박
남아공의 급진 좌파 정당인 경제자유투사(EFF) 등은 오라니아를 헌법을 모독하는 신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소굴로 규정하고 공동체의 토지를 즉각 몰수하고 강제 해체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아공 중앙정부의 정치적 기류가 급진화될 경우 법적 지위가 한순간에 박탈당할 위험이 항상 존재합니다.
독자적인 자치주로의 분리 승인 요구
반면 오라니아 지도부는 현재의 단순한 민간 마을 수준을 넘어 스위스의 칸톤처럼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받는 아프리카너 자치주(보어스탄)로의 공식 승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남아공의 오라니아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백인 우월주의적 환상을 좇아 도피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고립된 성채라는 비판과 흉악 범죄와 시회불안의 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막에서 일궈낸 놀라운 자립 공동체라는 엇갈린 평가를 동시에 받는 가장 기묘한 형태의 실험입니다.
인종 갈등과 경제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과연 이 백인들만의 섬을 언제까지 공존의 영역으로 남겨둘 것인지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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