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왜 1970년대까지 피비린내 나는 식민지 전쟁을 벌였을까
[세계의 영토 변천사] 포르투갈은 왜 1970년대까지 피비린내 나는 식민지 전쟁을 벌였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탈식민지화의 거센 바람이 불던 시기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유럽 강대국들은 주민들의 반발과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식민지를 포기하거나 독립시켰습니다.
하지만 해상 제국의 선구자였던 포르투갈은 1970년대 중반까지 식민지를 절대로 내놓을 수 없다며 무려 13년 동안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참혹한 식민지 전쟁을 벌였습니다.
식민지를 갖고 있던 유럽열강들이 대부분 포기한 식민지 정책을 유독 포르투갈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유지하고자 했는지 그 내막을 알아보겠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남미대륙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 프랑스도 있긴 합니다)
1. 독재자 살라자르(Salazar)와 영토의 착각
포르투갈이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나라를 지배하던 극우 독재자 안토니우 디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onio de Oliveira Salazar)와 그의 후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1932년부터 장기 집권을 시작한 살라자르와 그 추종세력은 포르투갈의 정체성을 개편했습니다.
그들은 앙골라(Angola)와 모잠비크(Mozambique) 그리고 기니비사우(Guinea Bissau) 같은 아프리카 식민지와 인도네시아 옆에 있는 동티모르(East Timor), 홍콩옆의 Macao등을 해외 영토가 아니라 포르투갈 본토의 불가분한 일부분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국민들을 3F 원칙에 따라 우민화 방향으로 통치하고 반대자들은 강력히 탄압했습니다.
3F는 Fado, Fatima, Futebol 즉 음악, 종교, 축구를 말하는것으로 국민들이 정치에 아예 관심 갖지 않도록 유도 했습니다.
유럽의 작은 약소국으로 전락한 포르투갈이 세계 무대에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거대한 해외 영토가 필수적이라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살라자르는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포기하는 것은 국가적 배임이라고 비난하며 식민지의 독립요구를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2. 아프리카 대륙에서 터져 나온 독립의 총성
그러나 민족 자결의 시대적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1960년대 초부터 포르투갈의 핵심 식민지였던 앙골라와 모잠비크 및 기니비사우에서 민족 해방전선이 결성되어 무장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독립군 세력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정글과 오지에서 피비린내 나는 게릴라전을 펼쳤습니다.
독재 정권은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자국의 젊은 청년들을 대대적으로 징집하여 아프리카 전선으로 내몰았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국가 전체 예산의 40% 이상을 오직 군사비로 쏟아부을 정도로 식민지 전쟁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3. 피로 물든 13년간의 식민지전쟁(1961-1974)과 흔들리는 포르투갈 사회
1961년부터 시작된 이 전쟁은 무려 1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가난했던 포르투갈에게 3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장기전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만 명의 포르투갈 젊은이들이 타국 땅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프랑스등 해외로 망명길을 떠났고 본토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노동력 부족으로 완전히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프랑스등 해외로 망명길을 떠났고 본토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노동력 부족으로 완전히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국제사회는 지옥같은 전쟁을 고집하는 포르투갈을 향해 식민지를 포기할것을 요구하는등 국제적 비난과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4. 카네이션 혁명(Carnation Revolution)과 식민지 제국의 몰락
1932년 집권하여 1968년 심장병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Salazar의 뒤를 이은 후계자 Marcelo Caetano는 1961년부터 계속되고 있던 식민지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Dirty War를 끝낸 것은 정작 전쟁터에 나갔던 포르투갈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Dirty War를 끝낸 것은 정작 전쟁터에 나갔던 포르투갈 군인들이었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무의미한 유혈사태를 목격하고 지친 청년 장교들은 일부 군인들의 주도로 비밀 조직을 결성했습니다.
1974.4.25. 이들은 리스본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40여 년 동안 이어진 독재 정권을 단숨에 무너뜨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독재정권에 지친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구에 카네이션 꽃을 꽂아주며 평화롭게 성공한 카네이션 혁명입니다.
새로 들어선 혁명정부는 즉각 무의미한 식민지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새로 들어선 혁명정부는 즉각 무의미한 식민지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5. 급작스러운 철수와 아프리카의 비극
1974년 혁명 이후 포르투갈은 앙골라와 모잠비크 및 기니비사우 등 모든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을 신속하게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준비없는 급작스러운 철수는 또 다른 비극을 낳았습니다.
포르투갈 군인과 행정인력이 빠져나간 권력의 공백은 정권 지분과 이념을 둘러싼 거대한 내전을 초래하였습니다.
앙골라와 모잠비크는 독립직후 수십년 동안 참혹한 내전에 휩싸여 국가 전체가 초토화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고집스러운 독재 정권의 오만이 빚어낸 식민지 전쟁은 포르투갈 본토는 물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도 거대한 역사적 비극과 깊은 상처를 남긴 채 막을 내렸습니다.
결국 고집스러운 독재 정권의 오만이 빚어낸 식민지 전쟁은 포르투갈 본토는 물론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도 거대한 역사적 비극과 깊은 상처를 남긴 채 막을 내렸습니다.